차별금지법은 민주주의다.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차별”, 익숙한 말입니다.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특히 박근혜 퇴진 촛불이 켜졌던 지난 겨울을 지나며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만 분노한게 아니라 그 뒤에 깊고 넓게 패여있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이후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광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귀를 기울였지요. 열린 광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집회문화 함께 만듭시다

 

1. 여성을 비하하지 맙시다. ‘여자라서나라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 미친년, ○○ 강남아줌마, 미스박)

2. 질병장애를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맙시다.() “○○는 발달장애/병신/정신병자다.”)

3.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하거나 원하지 않는 조언을 하지 맙시다.(성적/학력, 탈학교, 진로) 청소년에게 기특하다”, “대견하다”,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사양합니다.

4. 불쾌감과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신체접촉, 윙크 같은 성희롱을 하지 맙시다. 외모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해도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예쁘다, /못 생겼다)

5. 국가, 인종, 성정체성, 성적지향, 채식, 옷차림 등 정체성/가치관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조언하지 맙시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서 매 집회 때마다 집회 참여 시민들과 나누었던 공지사항입니다. 집회가 거듭될수록 자유발언을 하는 시민들이건, 퇴진행동을 대표해 나왔던 활동가들이건 할 것 없이 이 공지사항을 잘 지키게 되었고, 집회 초반에 곳곳에서 나타났던 조롱과 비하 없이도 촛불시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이것은 퇴진행동이 전적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이 곳에 참여하는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광장을 만들자는 시민들의 뜻이 상호작용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호응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국가폭력 피해자, 양심수의 가족들, 해고노동자, 청소년, 노인, 이주민, 빈민, 원전지역 주민, 성주 소성리의 주민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울들의 이야기로 넓어져갔습니다. 위와 같은 공지사항은 다양한 사람들이 광장의 주인이라는 원칙을 실질화하기 위한 당연하고 기본적인 수칙들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지는 조기대선은 그야말로 촛불대선이지요. 박근혜 정권과 함께 추락한 기존 여당들이야 그렇다치고, 자신의 힘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나라의 국민들이 차기 정부에 거는 기대는 남다를 텐데요. 그런 촛불 민심을 받들겠다는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있습니다. 여러 정책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입장차이가 도드라지는 차별금지법의 경우는 어떨까요?

 

저는 민주노총에서 연대사업을 맡고 있고, 그래서 퇴진행동이 결성되면서 지금까지 퇴진촛불의 실무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해온 여성 성소수자이기도 합니다. 지난 216일 성평등 포럼이 열린 자리에서 저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항의성 발언을 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가 2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 찾아가 성적지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지요.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습니까? 제 평등권을 반반으로 자를 수 있냐는 말입니다. 유력 대선후보면 대답을 해주시란 말입니다. 왜 이 성평등 정책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성평등을 포함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제가 던졌던 질문입니다. 이에 청중들은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를 연호했습니다. 결국 나중에답변하겠다는 문재인 후보는,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도 충분하다,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으므로 나중에 고려해보겠다, 나를 설득하려하지 말라고 했을 뿐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 나중에가 실제로 포럼 진행 중 뒷 부분에 답변하겠다는 말이었다며, 제가 무례하다고 하기도 했지요.

 

저를 무례하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한 여성 성소수자의 외침은 항상 유예되고 뒤로 밀렸던 자신의 인권을 지금 당장 보장해달라는 절실한 요구임을 알아차렸어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가 무슨 뜻이었건, 그 말이 많은 소수자들의 삶 속에 각인된 오래된 고통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것이 촛불로부터 배워야할 새로운 사회의 품격이자 기본 원리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듭니다. 물론 모든 정책과 제도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찬반양론이 팽팽하다고 하는 이면을 볼까요? 위에서 언급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3.1절 구국기도회명목으로 탄핵무효 집회에 신도들을 동원했습니다. 이들은 탄기국(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과 자신이 무관하다고 했지만, 탄기국 집회의 사전집회 성격으로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 기도회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었을 때부터 이 법안이 동성애 조장법이라며 반대했고, 여기에 부딪혀 차별금지법 제정은 10년간 번번이 좌절되었지요.

 

이유는 그렇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 반대하면 감옥간다. 공산주의 종북세력들이 국회에 금뱃지달고 입성한다.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극성을 부릴 것이다. 온 나라가 동성애자 천국이 될 것이다.” 이런 너저분한 이유들에 동의하는 사람이야 많이 없겠지만, 기존 야당마저 저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하고 눈치를 보는 동안, 기존에 존재하던 성소수자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정권 4년간 간첩신고가 5만건 들어왔다고 합니다. 강의실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했다고 신고한 경우도 여럿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집권 기간 동안 일관되게 증오를 부추겼고 그 결과 차별과 혐오는 심화되고 인권은 후퇴했지요. 사상과 표현의 자유 또한 제약 당했습니다. 증오를 부추기는 정권을 여기서라도 멈춘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음 정권이 방식이야 좀 다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촛불을 든 지난겨울 동안에 광장의 시민들은 정권을 무력화함으로써 끝날 줄 모르고 치닫던 증오의 질주를 얼마간 늦추고, 소수자와 애먼 사람들에 대한 증오보다는 정권과 구조적 적폐에 대한 분노와 변화를 위한 실천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유력대선후보들은 사회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이런 적폐들을 모두 끌어안고서 적당히 활용하겠다는 편한 길을 가려는 듯합니다.

 

촛불 그 다음은 어때야 할까요? 다시 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차별금지의 원칙을 만들어 공유하고 존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차별금지의 원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동등한 참여입니다. 동등하게 참여하려면 평등이 그 토양이 되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출신 국가와 민족, 지역, 인종, 피부색, 언어,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상황,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학력, 병력, 형의 효력을 다한 범죄 전력 등 사회적 신분으로 의하여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예방·금지하며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인권기본법입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지금껏 용인되어온 갖가지 차별과 혐오를 거두어내고 힘없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참여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양성과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촛불대선을 앞두고, 민주주의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은 자랑스러운 촛불시민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인권교육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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