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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소식/인권교육 바람곶

[집담회 후기]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십대들의 생각을 묻다.

 

[설문-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10대들의 생각을 묻다- 나의 sns는 안전할까?] 집담회 후기

 

와플(인권교육 온다 활동회원)

 

 

‘n번방 사태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피해 양상을 보면 피의자 중 절반을 10대가 차지한다. 이에 대한 정책 마련을 위해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경기여성단체연합, 수원여성회는 00대안중학교 학생들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체 학생들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의도와 개요를 안내 한 뒤 남, 여 학생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먼저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10대들의 생각을 묻다란 설문을 작성하며 성범죄에 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자신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키워드를 적고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안전 지도를 그려보았다.

 

디지털 성범죄에 관련한 키워드에 대해 내가 참관했던 남학생 그룹은 (가족 여행 중 휴게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 됐을지 모른다고 했던)누나의 불안함, 랜선, 인터넷, 유포, 범죄와 같은 종류의 단어를 적었다. 디지털 성폭력의 직간접 경험을 묻자 대부분은 애초에 부모님과 약속으로 인터넷 사용이 제한되어 오픈채팅 같은 환경에 접근할 기회가 없다고 답했다.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한 안전지도를 그리는 시간에는 더 많은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나라 가해자가 받는 처벌이 외국보다 약해 보이니 형량을 가중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학생 그룹은 SNS, N번방, 성범죄, 성범죄자 더불어 무서움이나 두려움같은 본인의 정서가 반영된 단어를 적었다.

 

N번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을 때 남학생과 여학생 그룹 모두 내용을 잘 알지 못했고 한 여학생은 환경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낮기에 두려움이 크진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성범죄 관련 키워드를 적으며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정서적 반응은 달랐다. 남학생 그룹은 뉴스에 나온 사건들을 보면 성범죄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기에 '안되었다', 불쌍하다는 답변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여학생들이 느끼는 불안은 당연해 보였다.

 

참여자들의 다양한 생각 지형을 드러나게 하는 스펙트럼 토론 시간은 학생들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토론주제1: ‘초등학생이 피임교육을 받는 것은 시기상조이다.’그렇다10, 아니다0

초등학생이 피임교육을 받는 것에는 모든 학생이 동의했으나 좀 더 세분화 된 교육 시기에서 의견이 갈렸다. 몇몇 학생은 피임은 어릴 때부터 교육할수록 좋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외에 학생들은 초등학교 고학년(4학년)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핸드폰 소지시기가 낮아질수록 문제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이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 시기를 묻자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답했다.

 

토론주제2: ‘술 먹고 밤늦게 다니다가 성폭력을 당하는 건 피해자의 책임이 있다.’그렇다10 아니다0

남학생과 여학생의 응답은 크게 차이가 났다. 여학생은 피해자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0을 표기했고 남학생은 절반정도 5에 가까운 곳에 체크를 했다. 여성이 어느 정도 상황을 제공해 준 게 아니냐는 게 이유였다. ‘나쁜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며 자신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인식했지만 그럼에도 자연스레 드는 생각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 남학생은 애초에 성폭행은 일어나면 안 되고 동의가 없으면 결코 성관계를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몇몇 학생이 이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표시했던 곳에서 더 낮은 점수로 옮기기도 했다.

 

토론주제3: ‘디지털 성착취 피해자가 청소년이라면 부모에게 꼭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렇다10, 아니다0

대부분의 학생이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다만 알리는 방법에 있어 부모님이 속상할 수 있으니 경찰에 직접 고발하거나, 법적 대리인인 부모님이 어차피 아실 일이니 미리 말씀드리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지만 어차피 부모님에 의해 다시 말해질 거라고 했다. 한편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말할수없는 조건에 있는 청소년도 있다는 부분도 함께 이야기하였다.

 

스펙트럼 토론시간은 학생들 간에 의견을 주고받으며 설득되는 과정이 일방적인 교육보다 효과적으로 보였다. 그 중 토론주제2 ‘술 먹고 밤늦게 다니다가 성폭력을 당하는 건 피해자의 책임이 있다.’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여학생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불합리를 내세우는 반면 남학생은 피해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답변에서는 교육이 필요한 지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토론주제3에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반드시 부모를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는 청소년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인정하는 듯 보였다. 청소년 인권조례 등 다양한 방면으로 인권향상을 위한 목소리가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청소년이 미숙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내가 본 청소년들은 그들만이 가진 유연함으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여느 어른보다 나아 보였다.

 

청소년의 범주에서 본다면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일반학교 학생이 알고 있는 정도도 대안학교 학생들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기까진 그다지 멀지 않은 시간이다. 그들이 온전한 어른이 되기 위해 학교는 벽이 아닌 현실과 이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들에게 보다 적절하고 현실적인 성교육, 성범죄에 대한 교육과 토론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