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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칼럼]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전국적 학생인권조례 지우기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지난 9월20일 경기도교육청 임태희 교육감은 현재의 학생인권조례를 ‘경기도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 바꾸겠다는 ‘경기도 학생인권 일부개정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런데 개정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인권가치를 폄하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5일 “학생의 인권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전국에서 최초로 제정됐다.

 

인권의 의미와 가치를 말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존엄성과 보편성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여기서 강조돼야 할 것은 바로 ‘모든’ 사람이다. 다시 말해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성별에 따라 많든, 피부색이 어떻든, 나이가 많든 적든, 학생 신분이든 아니든 따지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은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하며 책임의 대가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하면 저것을 줄게라는 말로 거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한데 지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은 말이 개정안이지 인권을 부정하는 개악안과 다름없다. 조례안 명칭부터 ‘경기도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으로 바꾸려 한다. 학생 책임을 강조하다 학생인권을 오히려 침해·후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한 사유 없는 학습권 침해’, ‘임의적 교내외 행사 참여 강요’,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강요’,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 강요’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안 된다’고 정해 학생인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규정을 ‘의견을 존중한다’고 수정한 것은 명백히 학생인권의 후퇴다.

 

‘상벌점제’ 금지 조항의 삭제는 말할 것도 없다. 또 개정 과정에서 은근슬쩍 인권보장의 책임을 져야 할 정부와 교육청은 지워버렸고 책임의 주체로 학생만 강조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특별한 내용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1991년 지키겠다고 약속한 국제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다르지 않고 대한민국 모든 시민의 기본법이 되는 헌법에 기초한 내용이다. 정부와 교육청은 학생인권이 잘 보장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인권을 기반으로 정당한 교육활동이 이뤄 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교사를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을 보장하는 책임이고 책무다.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권고사항에 ‘대한민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의 인상을 받았다고’ 담겨 있다. 아동의 인권을 보장하기는커녕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적 이미지는 너무나 부끄럽다. 학생인권조례 개악이 아닌 정당한 교육활동의 기준이 될 학생인권법제정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힘을 모아도 늦은 시간이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310235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