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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소식/소식지 : 온수다

[한달살이 후기]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며?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며?

 

 

 

그린(인권교육온다 상임활동가)

 

 

달랏의 하늘과 호수

 

한달살이 마음을 먹다

여행을 떠올리면 설렌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행이란 단어가 내 삶속에 늘 따라 다닌다. 한달살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제법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이다. 제주 한달살이, 양양 한달살이이가 등장하다가 이제는 해외에서도 한달살이를 살다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한달살이를 나도 언젠가부터 동경하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나도 꼭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올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달이라는 안식월이 나에게 고맙게 찾아왔고 함께 지내는 아이의 겨울방학이 생각보다 길었다. 춥고 긴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하다가 마음에서 따뜻한 곳으로 떠나자 그리고 조금 길게 있다오자고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정한 곳이 베트남 나트랑과 달랏이었다.

 

한달살이를 준비하다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한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려고하니 이것저것 걱정되는 마음과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달을 어떻게 보냈다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내가 한달살이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우선은 뭔가를 정해놓고 싶지는 않았다. 첫 한달살이니까 이 한 달을 무사히 잘 지내다 오자라는 생각과 너무 타이트하게 보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누군가 한달살이는 여행과는 다르다라고 이야기했다. 유명한 숙박 플랫폼 사이트의 홍보 제목도 여행은 살아보는거야라고 정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추측을 해본다. 머무는 것도 살아보는 것의 차이는 뭘까? 살아보기와 여행의 차이를 아직은 경험이 없으니 살아봐야 이것도 알 것 같다. 그 차이를 느껴보기 위해 나는 떠났다.

 

한달살이를 살아보다

낯선 곳에 있다보면 예상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떠나는 날 먼저 도착한 지인이 우리가 장박으로 잡아놓은 숙소를 가보고 거기서 머물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숙소상태가 너무 안좋았다. 살아보기도 전에 살아보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비행기 타기 전까지 숙소문제를 안되는 언어로 해결하려니 고단했다. 다행히 문제는 해결되었고 우리는 돈은 조금 더 쓰게 되었지만 괜찮은 가격으로 다른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에피소드는 이후에도 틈틈이 있었다. 함께한 아이들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생겼던 트러블, 생각보다 파도가 거세어 바다에서는 가슴을 조이며 아이들을 지켜보았고, 현지 무작정 버스타기에서 만난 러시아분과의 짧은 대화, 아이가 덤블링을 하다가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박았던 아찔했던 순간, 한번의 만남이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았던 댕댕이(노아)와 마지막 인사를 못나누었던 슬픈일, 버스예매 잘못해서 변경해야하는데 어려워 하루를 애먹었던 일, 속이 안좋아서 이틀은 거의 아무것도 못먹었던 일...

반면 바다 앞에서 멍때리기, 새벽에 일어서 명상해보기, 이곳저곳 싸돌아 댕기기, 책읽기, 못봤던 드라마 몰아보기, 길가다 맛있어보이는거 사먹기, 깊은 바다에서 첫 스노쿨링하면서 물고기 구경하기, 맑은 해변에서 모래놀이와 신기한 돌 구경하기, 현지음식 먹어보기(오징어 숯불구이, 오징어 쌀국수, 반쎄오, 반미 등), 바다와 호수에서 해지는 노을 바라보기, 하늘에 반짝이는 별보기, 아침에 산책하며 가까이 떠있는 구름 보기, 바다에서 나뭇가지 하나로 물고기를 잡는 그곳 사람들 구경하기 그리고 그들 속으로 한발 더 들어가보기,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조금더 지켜보기.

 

달랏 랑비앙 산 정상
달랏 다딴라 폭포 앞에서
나트랑 바다에서 현지분 만나서 물고기 잡기 체험

 

낯선 곳의 풍경 그리고 성장

베트남은 한 10년 전에 와 본적이 있다. 그때도 어마어마한 오토바이 무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때 어떻게 길을 건넜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번 여행 길 건너기 미션은 나보다 아이가 더 차분하게 길을 건넜다. 처음에는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 놀라고 사람이 건너는 것에 틈을 주지 않아 놀라고 아이는 엄마 여기는 왜 이렇게 빵빵거리고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하기가 어려웠다. 어느순간 아이는 길을 건널 때마다 긴장하는 나를 보며엄마 이럴 때는 좀더 여유롭게 건너야해..’ 그 말에 쫄리는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고 리듬을 타듯 길을 건너게 되었다.

아이는 여행을 하면서 어른들이 식당에서 주문하는 몇 단어의 영어를 캐치하고 어느순간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손으로 짚어가며 스스로 주문도 하였다. 카페에서는 핸드폰을 들고가 와이파이를 연결해달라며 일하시는 분들에게 내밀기도 했다. 아이의 자신감에 잠시 놀람과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행에서 소심과 대담사이 줄타기를 하고 소심해서 놓친 것들을 나중에 후회하기도하고 이후에는 더 잘해보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이번 살이에서 보았던 것은 나와 아이의 성장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다음 살아보기는 덜쓰고 쓰레기도 덜 나오게 하는 여행에 대해서 조금더 노력해보겠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떠나는 먼 여행이었고 그 사이 나를 포함한 지구인들이 생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조차도 내 것이 아니니 더 쓰고 더 버리는 습관이 나왔다. 해변을 걸을며 보였던 많은 쓰레기들 그리고 숙소에서 하루에 한번씩 새것으로 갈아주는 청소 서비스까지 넘치는 것이 보였다. 알았지만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지구의 생태와 우리의 삶을 위해 일상에서부터 노력해서 그곳이 어디든 실천을 이어가보겠다.

 

여행을 어느정도 다니다보니 그곳에 마냥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힘든상황이 생겼을 때 그럴 수 있어 그런 여유정도는 생겼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낯설음을 즐겨보려 했는데 아직은 어색하다. 그리고 나를 조금더 지켜보며 들여다 보려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큰 욕심을 부린 것일까? 하지만 실망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다음이 있지 않는가?

 

달랏 수엉흐엉(?) 호수 노을지는 모습

 

다음살이를 기약하다

밤비행기를 타고 새벽을 달려 아침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못해본 것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나보다. 처음에 떠날 때처럼 아프지않고 다치지않고 무사히 다시 돌아왔다. 한달살이를 한건지 한달여행을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 또다른 에너지가 되어 다음 살이를 기대하게했다. 한달 동안 틈틈이 읽었던 책이 있다. 여행의 이유(김영하)이다. 나는 무슨 이유로 또 떠나려 하는가? 책 한곳에 적혀있는 글을 마지막으로 이번 한달살이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한다.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예기치 못한 마주침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그리하여 매순간,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_김영하 

 

여행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는 지금 나는 다른 살이 할 곳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