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 소식/소식지 : 온수다

딸과의 졸업 여행 2 –스위스 ‘마테호른’

시간에 따른 마테호른의 변화

지난 글, ‘체르마트에서 쓴 것이 당시에는 엊저녁 일인데, ‘마테호른편을 쓰는 지금은 엄청난 시간의 틈이 존재하는 것 같다. 표현이란 것이 이리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옮겨 다닌다니 벌써 글을 시작하기가 두려워진다. 하지만, 무지에서 오는 아집의 무게보다 무지에서 오는 용감함에 기대를 걸어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딸과 함께한 졸업 여행의 마지막 정리이기에 여행의 수많은 새로움을 대하는 우리의 환희와 환호를 함께 느껴보기를 바라는 것으로 기쁨을 담아 시작해 보겠다. ‘마테호른에서의 우리의 여행에 대해.

 

어제의 체르마트는 마테호른이라는 메인 공연을 보여주기 전 여는 무대 같은, 조금은 관심이 떨어지고 메인에 집중하기 위해 필요한 마중물 같은 거라 생각했다. 그림 같은 레스토랑과 그 속에 있었던 두 사람의 인생이 따뜻한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동화는 결코 메인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린 또 한 번 배움이 일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어젯밤의 추억으로 다시 자리하고, 마테호른이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한 우리의 걱정을 모르는 것처럼 시간은 흘러서 새벽이 왔다. 바로 그날이다. ‘마테호른을 보러가는 날.

우리는 4시에 일어났다. 다행히 어제의 스위스 전통주로 만든 사벳은 나의 숙취를 일으킬만한 것이 아니라, 잠시 침대 속에 있고 싶은 게으름만 이겨내니 꽤 개운히 일어날 수 있었다. 커튼을 걷으니 창밖은 아직 짙게 어두웠고, 열린 창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아직 덜 깬 우리의 얼굴에 닿아 남은 잠을 깨웠다. 짐은 숙소에 두고 작은 가방에 카메라와 핸드폰, 물을 챙겨 나갔다. 일행들과 출발 할 때 하늘은 아직 별들을 숨기지 못했고 우리는 마테호른을 보기 위해 별들이 조금씩 사라지기를 바랐다. 지난 여행의 여독에 새벽 발걸음은 무거울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가벼워서 뛸 수도 있을 것 같아 한 발짝 ~올 짝뛰어봤지만, 체르마트의 바닥이 돌로 되어있다는 걸 깜빡! 뛰었다 닿을 때 울퉁불퉁한 바닥 사이에 신발이 끼어서 살짝 발목을 접질렸다. 그리고, 순간 부지런한 트럭이 옆을 지나면서 차가운 바람이 일어서 깜짝 놀랐다. 옆에서 옆구리를 꾹 찌르며, “엄마, 그만 좀 까불어! 다쳐. 조심해야지~”하며 곁눈으로 웃었다. 난 어제 우리의 동화책을 덮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 오늘의 페이지를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유명한 관광지 치고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서 이상했다. 혹시 다른 관광객들은 날씨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서 없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다. 여기에서의 우리 운이 다해서, 마테호른을 못 보는건가 하는 별 생각을 다했다. 마테호른은 일년에 30일 정도 밖에는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못 볼까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 순간에도 발은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말이다. 마테호른을 보러가려면, 가장 잘 보이는 맞은 편 명당 자리로 가야한다.

 

그러려면 산악 열차를 타고 올라 가야하는데, 그 산악 열차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났다. 멋졌다. 약간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행 열차의 오래된 버전이 있다면 그렇게 생겼을 것 같았다. 플랫폼이 아주 가파르게 쭉 만들어져있고, 열차를 타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다. 열차는 칸칸이 작은 블록을 계단식으로 얹어놓은 것 같아 전기로 가는게 아니라 마법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할 수 있어 재밌었다. 딸은 큰 눈을 더 크게 뜨고서 연신 앞과 뒤를 돌아다 봤다. 계단 블록의 중간 층에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 뭐야 벌써 신기해! 그렇게 산약 열차는 달렸다. 창밖은 알프스의 자락이니 상상이 되는 것처럼, 웅장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새벽이라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혼자 킥 웃었다. 산악 열차는 칸칸이 산을 오를 때마다 덜컹이고 끼릉끼릉 힘든 소리를 냈다. 기차는 얼마 가지 않아 멈췄고 우리는 약간의 흔들림을 손잡이로 붙들며 중심을 잡고 내렸다. 그리고는 플랫폼을 나와 산에 오르는 입구로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베이..터 가 있었다. 조금 땀을 흘려 오른 뒤,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마테호른이 내 눈 앞에 딱!!! 있는 숨막히는 순간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마법같은 순간에 현실 세계의 철문이라니, 것도 자동으로 열리는... 딸과 나는 뜨악했다. 우리의 상상을 망칠 수는 없었지만, 타지않으면 마테호른을 못 본다니까... 그냥 탔다 뒷 사람에게 등 떠밀려서.

 

마테호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명당자리, 맞은편 산자락에 도착했을 때, 서서히 어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밝은 빛이 서서히 밀려왔다고 해야하나. 암튼, 하늘이 한 번 밝아질 때마다, 스위스의 산은 어둠의 옷을 벗고 자신의 아름다운 옷을 드러냈다. 스위스의 관광명소를 들를 때마다, 마테호른의 엽서는 하나 같이 그림처럼 황금빛 산꼭대기를 하고 있었다. 요것들도 캐논 마크4로 찍었나?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카메라가 그 카메라밖에 없다. 그 카메라로 뭐든 잘 찍는 딸 아이를 보면서, 말을 안 했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암튼, 밝아지는 하늘은 서서히 마테호른 산으로 다가갔고, 우리는 그 시간을 1, 2, 10, 4... 세고 있었다. 다가가는 아침은 그곳에 있는 호수도 들르고, 들판에 있는 풀들과 나무도 만져서 투명하고 푸르른 빛을 서서히 되찾아 주었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마테호른의 꼭대기에 황금빛이 내려앉았다. 그 광경을 표현하기는 힘들다. 12명 남짓 되는 여행객이 눌러대던 카메라 소리도, 여기 서봐, 저기 서봐, 잘나왔어 됐어, 손을 들어봐, 이러라 저래라 산을 울리던 시끄러운 소리가 단번에 사라졌다는 것.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겼을 때, 그 찰나가 그랬을까. 뭔가 멈췄는데, 엄청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걸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살짝 숨을 참았다가 휴 뱉어내고는 딸과 나는 눈으로 정신차려얼릉 찍어!!! 얘기했다. 서로 핸드폰으로 금을 두른 꼭대기를 초점에 맞추어 엄청 찍었다. 황금산은 호수에도 내려가 데깔꼬마니처럼 마주 보는 쌍둥이 황금산을 만들어냈고, 그 광경은 왜 그렇게 똑같은 엽서들이 가는 곳마다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우린 말이 없어졌다. 해가 더 높이 뜰 때마다, 마테호른은 더 진한 황금빛으로 둘려지고 둘려져서 주위의 낮은 산들에게도 입혀주었다. 아직 주위가 다 밝아지지 않아 더욱 빛나던 마테호른이 잊혀지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딸과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나중에, 딸에게 물었다. “너 왜 눈감고 잠시 있었어?”라고. 딸은 이렇게 말했다. “나눠 주고 싶었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게 받은 깨끗한 마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눠 주고 싶었어. 엄마. 엄마도 받았지?” 눈물이 났다. 황금빛 마테호른을 만든 해의 조명도, 서늘한 공기도, 둘러져있는 주위의 산들도, 들도, 호수도 그리고 딸의 기도가 더해져서 그 소중한 바람이 흘러흘러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닿아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딸이 아빠와 언니에게 페이스톡을 했다. 한국은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지만, 아직 깨어있어서 괜찮았다. 잠시 함께 마테호른을 둘러봤다. 그리고, 꼭 같이 오자고, 다시 함께 여기, 서 있자고 했다. 그때, 이 산이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 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행운이 그때에도 함께하기를 마지막으로 기도하며 내려왔다.

딸의 졸업 여행은 스위스의 이곳저곳과 체르마트, 마테호른을 거쳐 프랑스 몽생미쉘을 들르고 파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여행은 늘 아쉽다. 우리에게 그렇다. 돌아가는 전날 밤은 시간이 멈춰주기를 서로 기도한다. 그러나, 인생은 또 일상에서 다른 마법을 가져다 주는 것을 믿으며 우리는 늘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여기에서 마테호른을 통해 받았던 순수함을 지키기 애쓰며 살아갈 것이다. 딸의 3년간의 홈스쿨링을 정리하고 20살을 시작하는 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여행이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받으셨나요? 그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요! 제가 여기 불어넣었답니다. 재미없는 글을 1,2편을 연이어 썼는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시 돌아온 4, 4.16 세월호와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를 꼭 기억하기를 부탁드리며 글을 정말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