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 소식/소식지 : 온수다

[여행후기] 딸과의 졸업 여행 1 –체르마트

딸과의 졸업 여행 1 체르마트

 

몽당(인권교육온다 활동회원)

 

이 글은, 딸과의 졸업 여행 중 스위스의 체르마트 마을에서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에 대한 것이다. 함께 이 거리를 걸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로나마 적어본다.

 

우리가 떠난 여행은 독일의 프랑크프루트 공항 도착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2주간의 여정이었다. 그 중,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을 얘기해 보라면, 단언컨대 스위스의 체르마트이다. 체르마트는 버스가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딸과 나는 체르마트행 기차를 타는 역사에서부터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스위스의 또 다른 동화 속으로 가는 것 같아! 이럴 때를 대비해서 플레이 리스트를 준비했지.” 하며 딸은 내게 아이팟을 건넸다. 순식간에 자연을 담아내는 액자와 아이팟 속의 재즈는 우리의 감성을 한껏 끌어올렸다, 우리가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어쩐지 옆 사람들이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더라니, 어떻게 들렸을까 생각하니 웃기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했다. 그저 흥 많은 여행자의 해프닝 정도로 이해해준 것 같은 그들의 웃음이 고마웠다.

체르마트 역에 내리자마자 플란다스의 개의 파트라슈가 살던 마을이 생각났다. 자그마한 역사의 간판과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맣고 동그란 광장, 그 광장을 둘러싼 작은 가게들이 마치 만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몇 개 없는 광장 앞의 계단을 내려오자, 양쪽 끝으로 끌어당겨 마을을 갈라놓은 듯한 하나의 길이 다른 두 공간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 오른쪽은 관광지인 체르마트를 당당히 소개라도 하듯이 다양한 레스토랑과 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부채가 펴지듯이 쭈~욱 펼쳐졌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목조 건물이었지만, 사이사이에 세련된 건물들도 있어서 오히려 과거와 현재의 콜라보 같아 재미있었다. 역에 내린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면, 우린 사실 짐을 숙소에 던져놓고 이 거리로 빨리 나오고 싶어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길로 먼저 걸었다. 체르마트는 동네가 크지 않아서 한 바퀴 돌아보는데 오래걸리지 않는다. 마음먹고 돌면 1시간이면 넉넉하다. 짐을 숙소에 내려놓고 얼른 나와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딸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딸의 눈을 쫓아 체르마트의 먼 하늘을 쳐다보면 마테호른의 모습이 보여야 했지만, 오후 4시쯤인 시각에도 마테호른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일 새벽 일찍 마테호른을 보러 가야 하는 우리는 불안했다. 흐린 날씨로 인해 안개가 걷히지 않을까봐서 말이다. 마테호른의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설치된 cctv도 하얗게 안개가 덮힌 것만 확인해 줄 뿐이었다. 높은 산악 지대의 날씨는 시시때때로 변한다고 하니 우리의 내일은 오늘과 반대이기를 기도하며, 하늘을 보던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먼저, 마을을 모두 돌아보고 싶어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큼직한 돌덩이를 놓아 만든 마을 바닥은 여행에 지친 우리의 걸음을 더 무겁게 했지만, 이 길을 편한 아스팔트로 깔지 않고 돌길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고맙고, 그 길이 주는 멋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유럽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우리의 눈은 각자 새로운 도시의 신기한 것들을 쫓느라 바빴다. 한쪽에는 마테호른을 처음 등반에 성공했던가, 최대 등반했던가 하는 이의 이름과 등반 기록들이 새겨져 있어 트레킹 신발과 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둘러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여러 번 걸음을 멈춰야 했다. 거의 마을의 끝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하나, , 같이 외치며 몸을 휙 돌렸다. 이제부터 시작! 쭈욱 걷다가 궁금한 곳이 나타나면, 집중공약하기로 했다. 물론, 졸업 여행의 당사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여기저기 기념품 가게를 들락날락했다. 체르마트 마을사진이 있는 냉장고 마그넷, 각종 사진이 있는 엽서, 스위스의 상징인 양치기 개 인형을 사거나 전 여행지에서 샀던 기념품의 가격을 확인하면서 안심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마을 주민들이 추천하는 유럽인들이 많이 가고 주민들이 특별한 날 이용한다는 레스토랑에서의 근사한 한 끼를 위해, 맘에 드는 기념품을 내려놓고, 가벼운 음식을 먹으면서 경비를 아껴왔던터라 구입한 기념품의 가격이 적당했었는지가 중요했다. 아니, 그 녀석이 무척이나 신경을 썼다. 얼마나 좋은 음식점을 가려고 이러나 살짝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기념품 가게들의 고풍스러운 외관을 만날 때마다 반짝거리던 눈빛과 장난기 가득한 입꼬리를 보는 것은 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아마도 앞으로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싶어하는 딸은 자신의 베이커리 상점의 인테리어를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걸어가던 우린 레스토랑들 사이로 난 작은 골목 안쪽에서 아주 오래된 목조 스위스 전통 가옥을 발견했다. 우리가 외양간을 따로 두었던 것과는 다르게, 스위스 전통 가옥에서는 1층에 돼지를 키우고 2층에는 생활 공간이 있었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어이가 빠진 맷돌 모양의 커다란 돌이 끼워져 있었는데, 이는 돼지를 키우는 1층에는 쥐가 많았기 때문에 2층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기둥보다 훨씬 큰 동그란 돌을 사이에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왔고 우리는 레스토랑을 찾기 시작했다. 그 기준은 일단, 동양인(사실, 그 당시는 유럽 관광을 많이 하는 일본과 중국이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해외여행을 금지해서 거의 한국인뿐이었다)을 포함한 여행객보다는 편안한 차림의 현지인이 많은 곳을 탐색했지만, 사실 실패했다. “엄마, 저기 저 사람들이 현지인이야? 관광객이야?”묻는 딸의 눈과 마주치면서 또 우린 바보같다며 한 참 웃었다. 맞다. 현지인과 관광객을 우린 구분할 수가 없었다. ㅠㅠ 그런 중에도 다행인 것은 레스토랑 앞에는 메뉴판이 제공되는 음식점이 많아서, 메뉴와 가격을 미리 확인할 수 있어서 들어가 물어보고 나오는 불편함을 덜어 주고 시간을 아껴주었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망스어, 4개의 공용어가 있는데, 체르마트는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다. 때문에 메뉴 모두 프랑스어로 쓰여 있어서,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음식점 메뉴판 앞에 서서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먼저 딸은 구글 앱으로 메뉴를 번역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안을 살피면서 사람들의 표정과 어떤 음식을 먹는지를 자세히 봤다.

 

체스트를 하나씩 깨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는 게임처럼 그렇게 여러 곳을 지나다 엄마, 저기다!!” “~” 우리 둘을 동시에 멈추게 만든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해가 이미 저물어, 햇빛 아래 감추었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면서 레스토랑의 메인 홀 문 앞의 노천 탁자들이 좁은 골목 양쪽으로 세워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로 삼각기둥 모양의 간이 화롯불이 장작을 태우고 있었다. 어둠과 만나는 불의 화려함을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음식의 향이 더해져 우리는 그곳에 꼭 들어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테이블이 하나 비어있었고, 우리는 안내를 받고 메뉴판을 보았다. 사실, 누구나 외국의 레스토랑을 가면 꼭 묻는 말이 있지 않나? 맛있는 음식, 최고의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스텝에게 얘기하는 것이다. ‘Could you recommend it?’ (당연히 우리도 여러 번 연습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ㅋㅋ). 다음엔 방송인 타일러가 알려준 쉬운 영어 ‘What is the best?’를 사용해 봐야지... 암튼, 스텝은 불어와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아서, 우리의 어색한 영어에도 잘 추천해 주었다. 아직 19살이던 딸은 여기서는 그냥 관광객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와인을 시켰다. 근사한 접시에 담겨진 음식과 와인으로 우리는 졸업 여행을 축하하며, 여기 체르마트의 영화 같은 밤 풍경을 즐겼다. 자연스레 3년간의 홈스쿨링을 정리하는 말들이 오고갔다. 수업이라 정하고 꾸준히 했던 책읽기, 베이킹, 케이크 레터링, 드럼 배우기, 스티커 그림 그리기, 필라테스하기,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여행 수업 등 수없이 많은 경험들을 떠올리며 정리해 나갔다. 때론 하기 싫고 어려워하는 딸과 끊임없이 이야기 배틀을 하던 시간, 감정이 상해서 서로 사과하던 순간, 힘들어서 홈스쿨링하길 잘했다고 말한게 실수일까 고민하던 아이의 눈물, 또 하길 잘했다고 깔깔대던 웃음, 그 모두가 이젠 딸의 역사로 남았다. 그 흐름 속에 내가 있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난 생각했다.

 

우리의 주제는 어느 덧, 20살이 되는 2023년으로 달려갔고, 어떻게 지내고 싶냐는 내 물음에 딸은 이제 그 고민을 시작해 볼거야. 그게 내년의 내 목표야!” 당당히 말하는 딸이 멋있고 행복해 보였다. 그동안 홈스쿨링을 함께 도와줘서 고맙다며 내년에 어떻게 지내고 싶냐고 되묻는 딸에게 나는 나도 생각해 보려고!”라고 답하며 웃었다. 우린 20살과 50살 시작을 앞둔 시점에 체르마트에서 살짝 멈춘, 이 시간을 위해 축배를 들었고, 서로를 응원하는 잔을 들었다. 디저트로 시킨 샤벳이 스위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로 만들었다는 것을 한 입 먹고 알게 돼서 뱉지도 못하고 입에 물고서 얼마나 웃었던지... 샤벳는 우리의 사진 속으로 저장한 뒤 먹기를 포기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잔을 높이 들어 부딪치며 축배를 들었고 어느새 내일의 날씨 걱정은 잊은 채, 체르마트에서의 꿈같은 밤이 지나갔다. 지금도 재잘거리던 레스토랑에 앉은 사람들의 소리를 뒤로 한 우리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레스토랑
체르마트 중심가
스위스 전통가옥
마을안쪽 풍경

 

 2편- ‘마테호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