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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소식/소식지 : 온수다

[서평] '가족을 구성할 권리' 를 읽고 나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 / 김순남 지음 / 오월의 봄

 

하성안(이윤보다인간을 활동가)

 

나는 비혼 1인가구다. 그리고 어떤 사정으로 인해 지인 한 명과 같이 산다. 그러니 정확히는 비혼 2인가구다. 그렇지만 비혼이 끝내 변치 않을 신념까지는 아니어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도 긴 시간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긴 시간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이런 나의 삶의 모습과 방식은 내 주변에 흔한 가족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기에 내 혈연원()가족과 친구나 지인들은 나의 이 삶의 방식을 보고, 내가 어떤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살고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같다. 시시때대로 결혼 생각 없니?’라든가, ‘아무리 그래도, 너도 네 가족을 만들어야지?’하고 말하는 걸 보면 ^^; 내가 아주 긴 시간을 이렇게 살아오고 있는데도...

 

하지만 누가 뭐라든,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돌봐 왔고, 같이 사는 이를 돌보고, 삶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 왔다. 지속되는 관계맺기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삶과 휴식과 돌봄의 시공간위에서 나의 기본적 사회관계가 출발하고, 이 중심에서 여기저기 바깥 세상으로 뻗어나간다. 그렇게 나는, 바로 여기서, ‘어떤 가족을 느낀다. 반면,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애정과는 무관하게) 멀리 떨어져 사는 나의 혈연원가족은 나에게 이런 감각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나를 규정하는 삶의 기본적 관계는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과 휴식과 돌봄의 시공간’, 바로 거기에서 출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결합의 조건과 시기, 결합의 대상 등 그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법체계든, 사회의 규범이든, 내 결정과 선택을 어떤 고정된 틀 속에 가두려 한다면, 나의 삶의 가장 기본적 권리가 훼손되고 있다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게 하나의 폭력이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이 폭력에 이미 오래전부터 노출되어 있었고, 지속되고 있다 느낀다.

 

이 책,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권리, 또 그것의 근본적인 박탈과 배제를 짚어내고 고발한다. 그리고 새로운 유대 위에 그 박탈된 권리를 다시 세우자 청한다.

 

우리 사회는 (이 책에서 그 가족이라 칭하는,) ‘이성애결혼으로 결합된 혈연공동체만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인정하는 사회다. 또한 국가는 법과 제도의 촘촘한 그물로 그것을 떠받치며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법전 속 가족에 대한 규정(특히, 민법 779가족의 범위’)에서 출발하여, 각종 사회적 시책과 복지제도 등도 그 가족만을 놓고 사고-인식하며 제도가 설계된다. 이것은 그 가족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합당한 영원불멸의 가치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적인 재생산과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국가의 지속적인 개입으로 만들어져 온 하나의 제도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마치 이것이 자연적 질서인 것처럼 전제하고 강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사회에서는 나와 같은 비혼 1-2인가구나, 동성애자 간의 결합, 친구끼리 함께 사는 것, 개인끼리의 합의에 의한 일시적인 결합 등, 그 어떤 것도 정상가족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취급될 뿐이다. 일탈이거나, 정상으로 향하는 과정일 뿐이라 치부한다. 바꿔 말하면, 이런 결합의 형태 속에서 삶의 시공간을 함께 나누고, 돌봄을 서로 나누며, 안정감과 연결감을 느끼는 수많은 나같은 이들에게, 그것은 가짜 가족이니 그 어떤 보호나 보장이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그 부정과 배제와 박탈에 맞서는 저항의 언어가 된다.

 

한편, 이런 공공연한 부정과 배제와 박탈 아래에서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결합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새로운 가족형태들이 이미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바깥에 존재함으로 인해 부정과 배제와 박탈이라는 폭력에 곧바로 노출되어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발명해 살아내는 최전선에 있다. 그들의 연결과 유대와 돌봄은 이미 현재형이며, 그들의 존재로 인해 가족의 형태는 더욱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서 정상가족이라는 말은 그들의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해체되고, 다양하고 자유롭게 연결될 권리는 지금 당장의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 가족의 틀에 억지로 맞춰 살아가기 보다는 자유롭게 연결되고 새로운 가족을 살아낸다’. 가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되는 것이고,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고 있다. 이 실천들을 국가와 사회가 어떤 틀에 가두고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돌봄과 연결과 유대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말하자면, ‘그 가족은 많은 이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한다면, 이 다양하고 자유로운 가족실천들은 더 많은 이들을 그 안으로 보듬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실천의 언어이다.

 

이 새로운 가족의 실천들이 새로운 유대와 연결을 우리의 권리로 요청하고 있는 한편, ‘정상가족신화는 해체되어 가는 와중에도 우리를 옥죄고 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돌봄과 유대 속에 살아갈 권리이며, 그런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실천이자 저항의 언어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 연결되어 살아갈 권리가 있다. 바로 그 연결의 의지를 우리의 권리의 토대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내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지금이나,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들의 돌봄에 기대게 될 훗날에도, 내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싶다. 더불어 나의 취약함이 내가 맺는 다양한 유대 위에서 안정적으로 붙들려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나의 권리와 희망이 국가에 의해 박탈되거나, 편견 속에서 사회의 바깥으로 배제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의 생애 내내 끊임없이 저항하고, 연결되고, 실천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돌봄과 유대의 자유로운 연결 안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 나의 권리이다. 우리 서로 각자의 권리를 가질 권리를 더 단단히 붙들자. 당당하게 요구하고, 더 다양하고 더 새롭게 연결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