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가장 낮은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되다

 

인권교육 온다



 

인권교육 온다를 아시나요?

온다는 온 마을 구석구석 따뜻한 인권교육을 퍼뜨리고 싶습니다.

온다는 숨겨진 인권을 발견하고 함께 변화하며 성장하는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인권교육, 인권을 다시 만나다

 

   20131025, 수원에서 한 인권교육단체가 창립식을 가졌다. 수원지역의 인권단체인 다산인권센터의 인권교육팀이 본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하늘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은 없듯이, 다산인권센터에서 인권교육활동을 진행했던 역사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들의 관심과 고민 속에서 인권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되새기게 되었고, 실질적인 활동과 실천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있었다. 그렇다면 온다와 같은 인권교육단체에서 생각하는 인권교육이란 어떤 것일까?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권리이다. 인권에 대해 무지를 강요하는 것, 내버려두는 것은 인권침해이다. 교육은 인권과 자유의 주춧돌이다.” (UN, ‘인권 새로운 약속)

 

인권은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인 양 여겨져온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주류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던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인권교육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교육의 목적이 당사자의 실질적 권한강화’-‘역량강화’-‘자력화라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 교육은 인권교육의 본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권교육 오르락내리락 고개 넘기)

 

   인권교육활동의 역사가 촘촘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인권교육 온다가 창립하기 전, 10여년동안 인권교육은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특히 다산인권센터에서는 청소년, 장애인, 교사, 사회복지사 등 인권을 더욱 필요로 하는 여러 사람들과 만났고, 이들과의 다양한 만남이 지금 인권교육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할 인권운동은 결코 현장을 버릴 수 없다.

   세월이 흐른 지금, 메마른 황무지 같았던 인권교육의 땅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인권이란 단어조차 낯설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권교육을 제도화하여 권장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학교에서도, 사회복지기관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인권교육이 꼭 받아야 하는 의무가 되었다. 누구나 인권을 배울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기에, 인권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무늬만 인권교육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인권교육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지속적인 모색은, 그래서 인권교육의 새로운 과제인 것 같다.

 

 

인권교육의 세 가지 기준

 

   인권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것만은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이 있다. 일명 인권교육의 삼발이라고 하는데, 세 가지의 축이 기준이 되어 인권교육을 지지해준다는 생각이다. 인권에 대한 교육, 인권을 통한 교육, 인권을 위한 교육을 하자는 원칙이다.

 

 첫 번째, ‘인권에 대한 교육은 말 그대로 인권이란 무엇인지 그 뜻부터 역사까지 인권에 대해 쉽게 재미있게 전하고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인권을 통한 교육은 인권을 어떻게 배우는가에 초점이 있다.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권적이지 않은 환경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지녔던 기존의 가치들과 인권의 가치들이 충돌을 빚는 공간이 바로 인권교육의 장소이다. 인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을 비하하는 농담을 하거나,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몇 백 명을 강당에 몰아넣은 교육환경을 만들어놓고, 졸고 있는 학생을 깨워 나무란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인권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처음 만들어지고 정말 많은 인권교육의뢰가 들어오고 있는데, 인권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껍데기는 있는데 속은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세 번째, ‘인권을 위한 교육이다. 인권에 대한 교육, 인권을 통한 교육은 궁극적으로 지금의 인권적이지 않은 것들을 인권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책상이 있는 곳뿐만 아니라 인권의 이야기, 인권감수성이 필요한 모든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현장,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서도 인권교육은 가능해야 한다. 또 이는 교육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만난 사람들이 인권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 관심을 갖고, 나아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인권교육이 그 변화를 일구어야 함을 뜻한다. 인권에 대한 교육을 인권을 통해 교육하고 그것이 인권을 위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권교육, 바람이 되다

 

   인권교육 또한 다른 교육활동들처럼 대체로 비슷한 틀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내용은 매번 같을 수는 없다. 참여자의 정체성이 다르고, 참여자들의 욕구가 다르고, 각자의 다양한 경험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완벽해보이는 교육안이나 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이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모든 내용을 다 재구성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교육은 주어진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을 필요로 한다. 교육은 무조건 전문가가 해야한다는 오해를 넘고, 공부는 책상에서만 이루어진다는 편견을 버리려고 한다. 이권을 원하는 사람, 그것을 교육으로 풀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함께하고 싶다.

  「온다는 때로는 휘몰아치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한 인권교육의 바람을 안고, 인권교육을 바라는 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다시 가장 낮은 곳에서 불어오는 인권교육의 바람이 되고자 한다. 여행은 같이 떠나야 제 맛. ‘바람길의 여행자가 되실 분, 어서오시라! 

 



Posted by 인권교육온다

취급받지 못하는 노동, 청소년 노동

이를 둘러싼 생각 3가지

 

생각 하나

무한도전은 내가 거의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본방사수는 못하지만 지난 방송을 꼭꼭 챙겨본다. 최근에 나온 방송분 중에 극한알바편이 있었다. 너무 재미있게 봤다. 이 방송을 본 후 접한 기사제목이 이거였다. [왜 이러세요 <무한도전>, 그거 위법입니다 [주장] 최저임금 위반한 <쩐의 전쟁2>...알바들은 웁니다 2014. 11. 25 오마이 뉴스] 무한도전이 개념방송이긴 하지만 그곳에서도 놓치고 있는 알바를 둘러싼 법적문제와 사회적 편견 등을 다룬 기사였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여전히 우리는 알바라는 위치를 사회적, 법적으로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알바. 얼마 전까지는 아니 지금도 여전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알바는 그야말로 취급받지 못하는 노동이다. 노동이란 개념이 일하는 것이고 노동자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의 댓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청소년 노동도 분명 노동이고 그 청소년은 노동자이건만 우리는 이들을 취급조차 하지 않는 현실이 참 답답하다.

 

생각 둘

2014년도에 몇몇 특성화고에 노동인권교육을 갔었다. 교육 주제는 참 거창하다. 그 짧은 시간에 노동법과 산재교육 등을 해달라고 한다. 가장 첫 번재 고민은 이들에게 노동법을 알려주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다. 노동법을 알려주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노동법만 알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하는 것이다. 성인 노동자들도 노동법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법을 알아도 내가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입도 벙긋 못하는 현실을 뻔히 아는데 청소년들은 다를까? 아니 오히려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 힘들지 않을까? 아무리 노동법에 유급휴가가 나와 있지만 개별적으로 청소년들이 사장님에게 유급휴일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고민은 특성화고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노동자가 될 것인데 이들은 대부분 노동이나 노동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왜 이들은 자신이 될 노동자에 대해서 자신이 하게 될 노동에 대해서 이렇게 부정적일까? 이렇게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부정적인데 이들이 노동자가 되어서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 갈 수 있을까? 하긴 대부분의 성인 노동자들도 노동자로써의 자존감이 있을까?

 

생각 셋

청소년 노동인권 관련된 회의와 교육을 몇 번 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인 이유가 청소년 노동인권 때문인데 청소년은 혹 청소년 당사자 단체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분명 청소년 노동인권을 위해 모인 회의고 교육인데 왜 청소년 당사자를 만나기는 이렇게 힘들까? 어떤 운동이든 당사자들이 중요하다는 전제를 할 때 어떻게 하면 청소년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특히 지역에서 청소년 노동인권에 대한 활동을 할려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청소년 당사자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그런 시스템과 사람들을 만나 갈 수 있을까? 고민이다.

 

더 많은 고민을 위해

고민은 많다. 이젠 이런 고민들을 조금씩이라도 풀어보고 싶다. 누구와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할지 막막하기는 하다. 하지만 꼭 이런 고민을 나누고 같이 풀어보고 싶다. 아마 내년에는 조금씩이라도 고민을 풀어 낼 수 있었으면 싶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이 모이고 더 많은 나눔이 모여서 취급받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같이 나누고 싶다.

Posted by 인권교육온다



「대놓고 자랑질」전천후 인권교육을 진행한다《인권교육 ‘온다’》

by 평생학습동향리포트 posted Jul 22, 2014

수원평생학습동향리포트 와 「대놓고 자랑질」

남들은 잘 모르지만, 진짜 알짜배기 우리 기관만의 자랑거리를 '대 놓고' 말하는 코너입니다. 어떤 내용과 형식이든 모두 자유! 편하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 뻔뻔하다고요? 한 번 읽어보세요. 넘치는 자랑 안에 우리의 생각을 이끄는 보석이 숨어 있답니다. (편집자주)

 

ON다, 溫다, 온다. 전천후 인권교육 단체 《인권교육 ‘온다’》

 

Q : “온다가 무슨 의미예요?”
A : 무슨 의미일까요? 혹시 떠오르는 게 있으신지...^^?

 

Q: 음... on/off의 온이죠? 그다음은 온다는 거죠 (손짓을 하시면서) 온다, 온다?
A: 와~ 이미 반은 눈치 채신 거고, 그 외에 따뜻할 온(溫), 온누리에서 온... 또 뭐가 있을까요.ㅋ

 

온다사용설명서.jpgQ : 이름은 알겠고... 왠지 최근에 이름을 듣게 된 것 같은데 언제 생겼어요?
A: ㅎㅎ그래요. 왠지 새롭지 않나요. 온다는 작년 1월에 출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어요. 물론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으로 활동한 시기까지 보면 꽤 되었지만요. 다산인권센터가 재작년 20주년을 준비하면서 계획 중이었던 인권교육단체준비위원회를 함께 구성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죠.

 



활동가사진.jpgQ:어쩐지 뭔가 있다 싶었어요. 그런데 《온다》는 활동가 이름이 좀 특이하던데요?
A: 네~ 온다는 7월부터 출산휴가를 들어간 메달, 난다, 만나다, 세훈이 상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진짜 이름이냐고요? 뭐 진짜라기보다는... 서로 불리고 싶은 이름을 쓰고 있어요. 특별한 의미보다는 서로가 살아온 경험이나 나이, 성별 등은 다를 수 있지만 활동공간에서는 평등하다는 출발이 있어서 별칭(닉네임)을 씁니다.

 



Q: 그렇군요. 작년 1월에 시작해서 올해까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는데 무엇을, 어떻게 활동해 오고 있나요?
A: 헤헤 드뎌 우리 활동을 소개할 수 있겠네요. 좀 전에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에서 독립해서 만든 인권교육단체라고 말했잖아요? 그동안 다산인권센터에서 진행해왔던 청소년인권, 노동인권, 그리고 장애(특히, 정신장애)인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권교육이 의무교육이 되면서 특히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솔직히 제도화의 속도가 사회인식의 변화보다 너무 빨라 여기저기서 인권을 브랜드화 시키는 건 마음에 안 들어요. 사회차별은 여전한데 법이나 제도는 갖춘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인권교육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하는 것은 아닌... 그런 딜레마도 있고요.
아, 이야기가 길어졌네. 그래서 온다는 인권운동을 인권교육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인 당사자의 힘을 확장시키는 것과 인권옹호자의 지지와 연대를 끌어내는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Q:주로 어떤 분들을 만나시는지요?
A: 그동안 만나본 분들이 무척 많은데... 초등부터 대학생 그룹까지, 사회복지관 종사자, 시설이용인, 공무원, 교사, 학교 밖 청소년, 시민단체, 자원봉사자그룹, 대학병원, 지역소모임, 이주여성, 인권 강사단 등등... 좀 많네요.^^

 

Q: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교육이 있다면요?
A: 다 소중한 만남이지요. 그중에서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중증장애인권강사단 교육이었는데 중증이시다보니 본인의 의견을 전달하시는 게 쉽지 않으셨는데 처음에 전혀 못 들었던 말들이 조금씩 들렸어요. 그분들이 말씀을 못 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집중해서 안 듣거나 못 듣는 체 했구나 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리고 초등학생들과의 만남인데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가르치려 했구나, 어른인척 했구나... 부끄러웠던 만남이었고 지금은 덜 부끄러운걸 보니 저도 좀 변하고 있나 봐요.

 

온다단체사진.jpg 초등사진.jpeg

▲인권교육 온다 창립식 단체 사진(좌), 초등학생 인권교육 단체사진(우)

 

Q: 앞으로 어떤 걸 좀 더 해 보고 싶나요?
A: 올해부터 청소년자치팀을 구성해서 학교 안 학생자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나누는 활동을 시작했어요. 아마도 내년엔 좀 더 다양한 활동팀을 구성해서 활동영역을 좀 더 확장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7월부터 시작하는 찾아가는 인권교육을 제대로 준비해서 앞으로 요청하는 인권교육뿐 아니라 지역에서 인권교육이 뭔지 궁금해 하고 나누고 싶어 하는 다양한 그룹을 만나고 싶어요. 

 

Q: 자~ 이제 끝으로 온다에 대해 대놓고 자랑질을 다섯 글자로 말한다면요?
A: 잘!생겼다.

 

글_ 만나다 (인권교육 ‘온다’)

 



출처 : http://www.suwonedu.org/suwon/group/58248




Posted by 인권교육온다


원문 링크 :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2797 

 


가장 큰 편견은 ‘편견’이라 인식조차 되지 않는 것 


_ 난다 ‘인권교육 온다’ 상임활동가


  

반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이 만나자마자 “어, 안녕? 만나서 반갑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어느 회의 자리에 참석한 당신에게 “넌 누구 따라 회의 왔니?”라고 물어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낯설기도 하고, ‘이 사람 왜 이래’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를 이런 경험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어려보이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쉽게 말을 놓고는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친한 척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군가에겐 당혹스러운 일이 누군가에겐 그렇게 대접받아도 상관없는 일로 여겨져 왔다면, 그 ‘당연함’에 대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동안 처음 만난 사람을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으로, 나에게 반말을 쓰는지, 존대를 하는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하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쉽게 반말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야말로 청소년인권이 어느 정도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사람에 대한 ‘너무 익숙한’ 편견

나이가 적다는 것. 몇 년 늦게 태어났다는 것. 보통 그것만 가지고도 그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청소년들은 나이를 이유로 미성숙한 존재, 아직 덜 되고 부족한 존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규정당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참여를 경험하거나, 어떤 결정에 동참하는 것에서 쉽게 배제되도록 만듭니다. 어린이, 청소년의 주체성을 의심하는 것이죠.

오늘날 만약 “여성은 남성에 비해 판단력이 부족하므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라거나 “흑인은 백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열등하므로 시민의 자격을 갖출 때까지 일정한 교육과정을 받아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몇 백 년 전에는 그 사회에서 당연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졌고, 소수자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근거로 쓰였다고 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기준이 될 때, 나이를 넘나드는 관계와 구조를 잘 상상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야”, “나이도 어린 것이...”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요구받는 순간, 그 누구도 특정한 사회적 기준과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나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말에는 그 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고들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 그리고 당신이 어린이,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관점과 태도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한’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함께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 이 글은 <노동과 세계 (547호)>에도 실렸습니다.)


Posted by 인권교육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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