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 소식/인권교육 바람곶

[요약 및 후기]2024비판사회학회 봄학술대회 '혐오의 수사학 혹은 철학'

 

온다 활동회원들과 봄학술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여러 발표 중 카톨릭대 하병학교수의 ‘혐오의 수사학 혹은 철학‘에 대한 나름의 정리와 후기입니다.

 

민주사회는 여느 정치 체제보다 많은 사람들과 의사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설득능력을 갖추는 게 필요합니다. 발표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인간이 이성적, 언어적 동물이라는 사실과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연관성을 바탕으로 수사학과 설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설득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소 중 청중과 관련된 감정(pathos)도 있습니다. 언어로 대중을 설득하는 수사학도 감정을 다룰 수 밖에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피노자는 욕망, 기쁜, 슬픔, 경멸, 미움 등 대략 45가지의 감정을 이야기하지만 혐오는 직접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혐오는 사람이 아닌 오물에만 한정된 표현이었습니다. 이미 노예와 계급으로 구분된 사회에서 혐오는 논의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혐오는 신분제 폐지와 민주주의의 형성, 현대에 인권의 개념이 생겨나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합니다.

 

발표자는 혐오가 왜곡, 폄하, 비하, 증오, 차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질문합니다. 여성, 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분명한 혐오로 볼 수 있으나 차별에 스며든 혐오의 지점을 어떻게 발견하고 논의할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혐오와 수치심>의 저자 너스바움이 혐오와 수치심이 법의 기초가 되면 안된다는 주장에 몇가지 의견을 제시합니다. 너스바움이 수치심과 혐오가 인간 존엄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긍정적인 부분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에 대해 좀 더 상세한 논의로 이어지지 않음을 아쉽다고 했습니다.

 

발표자가 정리한 혐오에 대한 소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혐오는 마치 통증처럼 원초적으로 신체와 결부되어 자신을 보호하는 감각과 직결된 감정이다. 동물 사체, 배설물, 오물, 오염물 등으로부터 감염을 막기 위해 후각, 미각, 촉각, 시 각이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불쾌한 느낌이 혐오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특성으로 인해 혐오는 정신적인 인식과 관념에도 손쉽게 스며들어 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쉽고, 또한 그 정당성에 대해서도 의심이 덜 가게 된다.

2) 싫어함미워함과 달리, 혐오는 불결함, 불쾌함, 그리고 가까이 다가옴으로써 발생하는 감염 가능성으로 인한 감각적인 반응, 예컨대 혐오스러운 자에 대해 구역질 나기, 토하기, 얼굴 찡그리기, 눈 가리고 코 막기, 손가락질하기, 욕하기, 침 뱉기, 돌멩이 던지기, 발로 차 기 등 공격적인 행위와 직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혐오는 대상자에게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쉽게 갖게 하는 동시에 혐오 표현, 행위가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위험성을 지닌다.

3) 구조적으로 보면, 발언자가 혐오 발언을 하면 당사자는 모욕감, 수치심을 느끼고 제3자는 혐오를 느껴 혐오가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혐오 발언이 넘치거나 근거가 미약하면 오히려 발언자에 대해 혐오감이 발생하기도 한다. 혐오(표현)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대상으로 강자, 다수자들 의해 발생한다. 한편 국내에서 선거철이 되면 정당들이 득표 를 목적으로 서로를 혐오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거대양당제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4) 증오적개심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상대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감정, 적에 대한 감정이다. 그렇다면 증오가 혐오보다 더 위험한 감정이다. 상대적으로 증오는 외부 세력, 적에 대한 감정인 반면, 혐오는 내부의 특정 집단에 대한 반감이다. 혐오는 한 집단에 대한 차별이 정당하다는 것을 내부 구성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주로 활용되는 것 같다. 일부 집단에 대해 증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차별을 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이때 구성원들에게 증오와 차별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혐오감을 갖게 하여 이것을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서 일부 구성원에 대한 차별과 증오가 발생하는 데 혐오가 작동하는지, 그리고 혐오가 정당한지 검토하는 일이다.

 

발표자는 혐오가 확산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언어라고 주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나치가 사용한 유대인 혐오발언입니다. 나치는 유대인을 부패성 곰팡이’,‘독성 있는 종양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초반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청중의 감정pathos만을 자극하여 목표달성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로고스(논증)과 에토스(화자와 관련된 성품)이 결여된 청중의 무비판적 수용이 지닌 위험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나타난 혐오발언으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차명진 전 의원과 정진석 의원의 혐오발언이 있었지만 내용이 너무 지나쳤기에 오히려 발언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감을 낳았습니다.

 

국내의 혐오 발언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대처하기 위한 대표적인 기관은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발표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92개의 혐오표현 중 몇가지 문장은 적절성에 대해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발표자가 혐오 표현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례 중 몇가지>

1) 지난 번 일에 대해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참··(40)" [일반적 표현]

2) "장애인들은 다양합니다. 1,2,3..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됩니다(40)." [자연현상 또는 의견 표명. 맥락에 따라 오히려 장애인 혐오를 부정하는 말로 해석 가능]

3)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이 우습게 만들어버린 누더기 선거법(40)" [일반적 은유]

4) "정부의 성인지 예산을 출산장려금으로 바꾸고, 낙태를 규제하고 생명 존중 사상을 강화 해야 합니다(41)" [의견 표명]

5) 우리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지 한번 봅시다 아들하고 딸하고 차별하고 키우십니까? (41)" [사용이 아니라 언급]

6"군복무가산점제부활(42)"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하는 의견 표명]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의 노력과 목적에 동의하지만 92개 표현이 모두 혐오발언인지, 국가위원회가 확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보고서 수행기관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해당 주제에 전문성을 가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일례로 1차 모니터링에 혐오표현으로 지적된 문재인 주사파 바이러스 퇴치입니다. 이 문구가 국민들에게 좌우 이념 갈등을 심화시키는 대표적 혐오발언임에도 최종적으로 삭제된 데에는 한계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의 말을 빌려 현실적으로 법조인이 과다한 내부적인 다양성의 부족을 꼽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여성문학 전문가들을 위시한 관련 전문가들과 더 많은 토론과 논의를 거친 뒤 시민들로부터 검증을 받으며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이 은폐된 여러 존재의 지평을 드러내는 출발점이라고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발표를 들으며 그동안 혐오의 경계를 가르는 일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정교한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자극적이고 단순한 표현만 가지고 혐오를 이야기 했던건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무 자르듯 단순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수많은 표현들 속에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혐오의 표현을 발견하기 위해 더 많은 의견들을 모아야 합니다. 정치계와 마찬가지로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지않은 인권분야의 현실은 씁쓸합니다.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것의 경계를 확인하는 토론의 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