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재주넘기
온다상임활동가 와플
가끔 듣는 팟케스트에서 현대인이 겪는 증상 중 하나로 보카치즘(혹은 볶아치즘)에 관해 들은적 있습니다. 바쁜 삶에 치여 자신을 달달 볶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지요.
지난해는 제게 보카치즘의 해였습니다. 처음 맞이하는 안식월은 더없이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어떻게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한달의 절반이 조금 안되는 시간을 제주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낯선곳에서 안정감을 느낄수 있는 곳이기에 혼자 한 여행중 가장 긴 여행에 도전해보겠다고 결심했어요.
이번여행은 나름 컨셉이 있습니다. 반은 제주도의 풍광을 음미할 수 있는 구좌읍에서, 나머지 반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제주시 동문시장근처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슬픈 예감은 럭키와플로’
2틀간 눈보라가 휘몰아쳤습니다. 머문 곳이 제주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흐렸어요. 하루 한끼는 맛난걸 사먹자 다짐했는데 숙소에서 먹은 양식은 컵라면, 구운계란, 과자한봉지, 그리고 맥주 한 캔이 전부였습니다. 덕분에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날씨여파로 숙소에 머문지 이틀만에 파란 하늘이 보였습니다. 언제 또 날씨가 흐려질지 몰라 근처 빵집을 향해 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립니다. 가다보니 바다쪽으로 난 갓길이 보입니다. 좀더 가까이 바다를 감상하고픈 충동에 우회전 깜박이를 킨 후 핸들을 틀고 내려갈 즈음.. 차가 급격하게 앞으로 기울며 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뭔일이 일어나도 일어났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뒤쪽을 확인하니 뒷범퍼가 가로로 길게 갈라졌어요. 제 마음도 쩍 갈라지는거 같았습니다. 너무 급하게 핸들을 틀었나보다 하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차도와 바다로 난 길 사이에 놓인 연석하나가 소실됐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차들이 같은 곳에서 잘못 튼 흔적들이 그제야 보입니다.
덜렁거리는 범퍼가 바람에 날아갈까 조심조심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걱정과 달리 렌터카 담당자와 원할한 소통으로 일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직원분은 청테이프를 사서 깨진 부분을 이어주면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하시더군요. 수리비는 보험금으로 해결됐습니다. 당장 테이프 구매 후 갈라진 범퍼가 날아가지 않도록 붙였습니다. "다치지 않고 별일 없이 마무리 됐으니 나는 럭키와플이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중 몇가지 장면들과 감상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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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오름 두번째 비자림’
제주에 있는 동안 비자림을 걷고 지미오름과 사라봉에 올랐습니다. 원래는 1일 1오름 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은 나중에 이룰 버킷리스트에 넣어놓기로 했습니다. ㅎ
당연한 말이지만 제주도 오름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이 있는거 같아요. 지미봉(첫번째 사진)은 적당히 가파른 오르막을 가다보면 약간 숨이 막힐 즈음 정상에 오릅니다. 정상에서는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요.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오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라봉(두번째 사진)은 제주시 한켠에 자리잡은 오름입니다. 동문시장 근처에 숙박 하신다면 사라봉까지 걸어서 30분정도 걸리고요, 산책하듯 오르면 작은 정자위에서 제주 일몰의 한 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정자근처에는 커다란 돌에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적혀 있습니다.
비자림(세번째사진)은 두 번째입니다. 몇해전 짧게 방문한 제주에서 흠뻑 취했던 숲의 기운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어요. 푸릇하고 향긋한 나무들 속에 걷는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그러다 아무도 없이 혼자 걷다 느껴지는 적막함은 가끔 무섭더라고요. 그럴 때 곁을 지나는 사람들과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봐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혼자있어도 혼자있는게 아닌’
제주도에서 하루는 길기도 했지만 짧기도 했습니다. 보고싶었던 영화들을 보고 독립서점에서 저에게 책을 선물했어요. 시간의 흐름을 감각하는 저를 보는일은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간 카페에서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숙소에서 저처럼 혼자 온 이름 모르는 손님과 나눈 속깊은 이야기도 특별한 추억입니다. 여행에서 맛본 여유와 풍경이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힘들때 꺼내먹는 초콜렛처럼 좋은 에너지를 건네주는 여행의 여운을 될 수 있는 한 오래 간직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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