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과 보호의 틀을 넘어서
상드(인권교육온다 상임활동가)
요즘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짧은 영상으로 뜨는 뉴스들은 꼭 보게 됩니다. 그저 흘러가는 영상 중 하나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보게 되는 뉴스들 중 최근 자주 접하는 소재가 청소년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어느 지역 학교 근처 다세대 주택에서, 담배 연기 피해를 호소하며 피우지 말라고 말린 중년 남성에게 욕설을 한 청소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그 남성의 발달장애인 자녀가 칼을 들고 나와 위협을 가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CCTV에 찍힌 청소년들의 모습은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뉴스는 다세대 주택 주민들의 말을 빌려, 학교와 지자체, 교육청이 청소년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또 다른 뉴스는 일주일 전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화가 난다는 이유로 동급생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흉기'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최근 OTT 드라마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폭력으로 대응한다는 설정의 작품입니다. 마치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발상으로 읽혔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흔히 응보적 법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서문을 들여다보면 다른 결이 보입니다. "정의를 온 나라에 퍼트리고, 사악한 자들을 없애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과부와 고아가 굶주리지 않도록, 평민이 악덕 관리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을 만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단비뉴스, danbinews.com). 즉 본래 취지는 응보 자체가 아니라 약자 보호에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정신을 단순한 폭력의 등가교환으로 납작하게 만든 것 같아, 저는 제목부터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37년전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외쳤던 '참교육'이라는 말이,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서사로 변질되어 제목에 쓰인 것 같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읽은 기사를 통해, 이 드라마가 단순히 드라마로만 소비되고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한 교육감이 '교육활동보호국'을 신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기사였습니다. 이를 보며,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건'으로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청소년에게 닥친 문제는 학교폭력만이 아닙니다. 청소년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과 제도, 입시 경쟁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현재의 교육 환경. 이것이야말로 더 근본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문제를 일으킨 개인을 단죄하는 것으로 '교육 문제 해결'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정작 그 폭력을 낳은 구조는 그대로 남게 됩니다. 가해 학생 한 명을 처벌하고, 보호 기구 하나를 신설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될지 몰라도, 다음 사건은 또 다른 얼굴로 반복될 것입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리겠다는 서사가 대중의 호응을 얻고, 정책마저 그 서사를 좇아 '보호'와 '처벌'의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면, 우리는 정작 물어야 할 질문—왜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화가 나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이런 방식으로 내몰았는가—을 놓치게 됩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이 진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응보가 아니라 약자가 더 이상 괴롭힘당하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가해자를 더 가혹하게 단죄할 또 하나의 기구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폭력이 자라나지 않도록 하는 교육과 사회의 근본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위한 교육은 청소년도 시민이라는 시민성이 학교에서 충분히 발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지시에 따르고 공부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가진 시민이라는 것을 체득할 수 있는 교육으로 변화된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주체적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의 차별이나 혐오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혐오와 차별에 대한 교육요청을 받고 온다 활동회원들 중 일부가 모였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교육방향에 대해 짧지만 이야기 나누고 어떤 교육안을 마련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하자고 하였습니다. 겨우 한 두교시일지라도 모두의 존엄함을 느낄 수있는 교육이 된다면 학교의 교육도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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