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의식과 인권의식 사이
상드( 인권교육온다 상임활동가 )
어제 아침, SNS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음성이 녹음된 영상이었는데, 학교 행정실장이 직원에게 온갖 폭언을 쏟아내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작년 전북의 한 학교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으로,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행정실 직원분이 남긴 녹음 파일이었습니다. 뒤이어 경기도의 한 사립학교에서 비리를 공익 제보한 교사가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일터라는 삶의 공간에서 존엄을 부정당한 이들의 비극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지난 주말 새벽에는 채 7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분리수거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주민과 경비원 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분명히 정해진 분리수거 시간이 있음에도, 계속 비닐봉투를 걸어달라며 떼를 쓰는 주민의 목소리에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요즘 숙면을 취하지 못해 뒤척이던 참이었습니다. 경비 선생님이 얼마나 곤란하고 곤혹스러우실지 짐작이 갔지만, 몸을 움직이기 싫은 마음에 그저 실랑이가 조용히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5분쯤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는 비닐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주민의 갑질이 통했다는 신호였습니다.
얼마 전, 한 사회복지기관으로 직원 교육을 다녀왔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실 있게 사업을 꾸려가는 복지관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밝은 표정으로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매번 사회복지사들의 감정노동이 얼마나 막대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누구든 조건 없이 환대해야 한다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4시간 동안 이어지는 교육이라 중간 쉬는 시간에 다음 교육을 준비하고 있는데, “잠깐 얘기 나누셔도 될까요?” 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관장님과 관리자 분이셨습니다. 인권교육을 하는 전문가이니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악성 민원인 때문에 직원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퇴사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민원인이 요구하는 것이 관철되지 않을 때, 행정부서에 민원을 넣어 괴롭히겠다는 협박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일에도 민원인을 달래기 위해 점심을 대접하고 오는 길이라며, 이로 인해 직원들이 현장을 떠나는 현실을 깊이 우려하셨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공감하며, "그래도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관장님이나 관리자 분들이 앞장서서 대응해 주셔야 직원이 보호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관장님께서는 본인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심지어 칼을 들고 찾아오는 민원인까지 상대해 봤다며 고충을 토로하셨습니다. "저 역시 가족이 있는 사람이고 목숨은 하나뿐인데 어떻게 매번 감당하겠느냐"며, 계속해서 밀어닥치는 악성 민원을 홀로 응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절박한 어려움을 호소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토로에 순간 어떤 답변을 드려야 할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동안 교육에서 가상의 사례(현실에 기반한 사례이기는 하지만)로만 다루었던 일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니 충격이 적지 않았습니다. 고심 끝에 그간 다른 복지관을 다니며 보았던 대안과 아이디어를 몇 가지 제안해 드렸습니다. 전화 통화 전 상호존중 안내 멘트 삽입, 복지관 내 인권 보호 안내문 게시, 이용인 대상의 인권 교육,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 시작 시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짧게나마 이용인이 지켜야 할 인권 행동 수칙을 안내해 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나아가 지자체 행정부서 및 사회복지사협회 차원에서도 제도적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민원인을 달래고 원만하게 응대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 개인이 악성 민원을 임기응변으로 받아주는 것은 그 순간의 모면일 뿐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악성 민원마저 이용인의 당연한 '권리'로 오인하게 만들고, 사회복지사는 서비스 제공자로서 무조건 이를 감내해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복지 현장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이 있는 능동적 주체로 바로 서기 위해서라도, 이용인과 사회복지사의 관계가 단순한 '민원인과 처리자'의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반드시 지양해야 합니다.
흔히 우리 사회의 '권리의식'이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권리의식이 '인권의식'과 같은 궤에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늘날의 권리의식은 대개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에만 초점을 맞춘, 철저히 '서비스를 누릴 권리'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향한 인권감수성이 결여된 채 자신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권리 주장은 결코 인권이 될 수 없습니다. 인권은 내가 존엄한 존재인 것처럼 타인 역시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라는 상호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타인의 권리와 나의 권리가 충돌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순간, 인권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게임으로 변질됩니다. 결국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은 경제적 효율성이나 힘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인권의 본질은 '존엄'이며, 인권은 오직 '관계' 안에서만 온전히 실현됩니다. 권리의 충돌이 아니라 존엄과 존엄의 연결, 그것이 바로 인권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새벽녘 실랑이가 끝난 뒤 창문 너머로 들려오던 비닐 소리가 오랜 시간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주민이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분리수거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존엄을 무참히 구기며 짓밟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처럼 권리의식만 비대해지고 인권의식은 자라지 못한 사회에서, 늘 패배하는 쪽은 언제나 힘없는 약자로 정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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