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엉뚱(인권교육 온다 상임활동가)

 

서울 어디쯤이었을까? 평소처럼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깨끗하게 청소된 길 위로, 얇은 잔가지들이 무리지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뭐지? 싶어 위를 보니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 잔가지 몇 개가 얼기설기 놓여 있었다. 나뭇가지에 아슬아슬 겨우 얹어져 있는 나뭇가지는 기껏해야 10개나 될까? 아스팔트로 떨어진 건 그보다 배는 많아 보인다. 그 때, 어디선가 잔가지를 문 새 한 마리가 나무로 날아온다. 얼기설기 잔가지들 위로 자신이 물고 온 잔가지를 올린다. 그 것 역시 아스팔트로 떨어진다. 매가리 없이 떨어지는 잔가지를 바라보려니 안타까웠다. 떨어진 걸 상관이나 하는지, 마는지 새는 다시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다른 잔가지를 물어오기 위함인 듯하다. 정돈된 이 도심에서 저토록 일정한 길이와 두께의 잔가지를 가지고 오기위해 얼마나 먼 길을 수고롭게 오갔을까?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게 이렇게나 많은데 왜 주워서 올리지 않고, 다시 새로운 가지를 찾으러 가는 걸까? 새가 미련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길 건너 나무 위, 번듯하고 촘촘하게 만든 새집이 보였다. 저 집을 지을 때도 집주인은 샐 수 없이 많은 잔나무 가지를 떨어뜨렸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나 멋진 집을 지었네. 그들만의 삶의 방식인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툴게 판단해 버린 듯했다. 집 한 채 장만하고 싶어서 아등바등 사는 건 내가 더 한 것 같기도 했다. 시간만 좀 더 있었다면 집 짓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행선지로 향했다.

 

얼마 전 온다는 한 장애인 단체의 의뢰로 장애이해교육 강사단 분들을 참여자로 모시고, 23일 동안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장애인당사자가 반 이상이었다. 참여자분들과 인권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다가, 그들이 장애외의 소수자와는 만날 일이 잘 없었고, 그간 보수교육이나 강사양성 과정에서 또한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책 활동을 넣어서 그간 만나보지 못했던 소수자들과의 만남의 장을 열어보고자 하였다. 사람책은 덴마크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2000년대 덴마크에서 선보인 이후 전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람이 하나의 책이 되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 하고, 듣는 이와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종이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교류를 하는 것이다. 사람책이 되는 사람들은 사회적 소수자로 타인의 가치기준 때문에 편견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책표지 ( 겉모습 ) 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

 

우리는 성소수자, 청소년, 이주노동자를 사람책으로 초대하였다. 30명 가량 되는 참여자들은 자신이 읽고 싶은 사람책이 있는 세 개의 방으로 나누어 들어가 1시간씩 책과 만난다. 참여자들이 사람책과 만나기 전, 사람책 활동을 소개하면서 ‘(사람)책을 소중히 대하고,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시길부탁했다.

동 시간에 세 명의 사람책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므로 모든 현장을 보진 못하였지만, 각 방엔 진행팀이 함께 했다. 진행팀이 공유한 현장분위기는 아슬아슬했다. 30~40분의 사람책 이야기가 끝나고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는데, 질문이 아닌 판단’, ‘회유’, ‘가르침이 사람책을 향했다. “000하지 않느냐?” “당신들이 000하면 더 좋겠다.” “당신이 어려서(혹은 미성숙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질문자의 태도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몇몇 질문자의 태도로 인해 사람 책이 당황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진행팀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이후 진행팀 평가에서 사람책 활동 이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면 좋았겠다는 의견을 나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평가에서 참여자분들은 사람책 활동에서 가장 깊은 인상은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몇몇 참여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람책에 초대되었던 사람책 주인공 분들- 청소년 활동가, 이주민, 성소수자

태어나서 성소수자를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기는 처음이었고, 대화를 나눠보니 많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에 주어만 장애인으로 바꾸면 우리(장애인)가 경험하는 차별과 똑같다.”

 

다음날엔 연극 활동을 했다. 참여자들이 장애이해교육 강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주로 만나는 교육참여자가 학교 청소년이었다. 청소년을 교육 대상자가 아닌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팀별로 몇 개의 청소년 카드를 주고(. 등교를 거부하는 학교 청소년, 시험성적 전교 꼴지 학교 청소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는 학교 청소년 등 ) 그들이 경험하는 차별이나 편견상황을 짧은 연극으로 꾸며보는 것이었다. 활동형 교육에 참여해 보신 적이 없다는 분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연극을 만드시는지 깜짝 놀랐다. 왁자지껄 화기애애한 상황에서 연극발표가 이어졌다.

팀별로 연극을 보여주면 다른 팀에선 어떤 상황인지 유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진행자가 질문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 청소년당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런데 어떤 상황인지까지는 잘 맞추는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웠다. 판단의 말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청소년이 화장을 하면 안 된다.”

선생님은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

요즘 교실에 가면 다 저러고 있다.”

 

4~5팀의 연극이 이어질 동안 힘들게, 힘들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 냈다. 막판이 돼서야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해서 힘들겠네요.”

연애는 할 수 있는 건데 벌점을 받는 건 너무 가혹 한 것 같아요.”

속상했겠네요.”

화가 났겠어요.” …….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짓고 있는 새를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걸까?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 걸까? 인권감수성이란 게 거창 할 것 같지만, 그것을 가지기 위해선 가만히 숨죽여 바라봄의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잠시 판단을 멈추고, 가만히 그들의 삶을 바라본다. 그러면 서서히 내가 가진 편견이 걷히고,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감정이 몸으로 흘러들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은 그들이 경험하는 그것과 내가 경험하는 그것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찾게 될 지도 모른다.

 

 

“남을 이해하는 건 별것 아닙니다.

오해는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이해는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죠.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폭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입니다.“

-휴먼라이브러리 창립자. 로니 애버겔-

 

Posted by 인권교육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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