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인권교육이 필요한가


: S 여성 청소년 쉼터 인권교육 후기

 


호야 (활동회원)



설렘과 불안 사이에서


S쉼터 인권교육은 시설 내부의 상황이 교육 준비기간 동안 급변하면서 두 번이나 일정을 다시 조율하는 등나름 교육 참여자를 만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교육이었다중간에 회기를 줄이거나 교육을 취소해야 하나 하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나는 최대한 원래 일정인 6회기를 꼭꼭 채워내고 싶었고결국은 들쑥날쑥한 일정이었지만 6회기 교육 그대로 준비하게 되었다내가 아무래도 청소년과 여성에 관심이 많다 보니 S쉼터 참여자들과 만나는 경험이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소규모 여성 청소년 그룹과 꾸준히 만나는 교육에 무척이나 설렜다하지만 동시에 이분들이 사회에서 쉬이 가시화되지 않는 분들이다 보니 나의 무지와 편견이 혹여나 상처가 될까 걱정도 되었고교육 접근 방식도 신중하게 정했다준비기간 동안 교육 참여자들과 비슷한 여성 청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책 <조금 다른 아이들조금 다른 이야기>를 읽으며 힌트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준비기간을 설렘과 불안 사이에서 보내고 있던 나는 첫 교육 전날에 센터로부터 온 참여자 특성’ 파일을 보고 살짝 멘붕에 빠졌다거기에는 지적장애 몇 급경계선성격장애 등을 비롯하여 센터 교사의 입장에서 본 교육 참여자들의 특성이 적혀있었다나는 장애에 무지하기에 곧바로 나열된 장애의 종류를 검색하여 찬찬히 살펴보았다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러한 정보가 참여자들 개개인을 파악하는데 필수적인 정보인지오히려 내가 참여자를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하게 되었다곧 나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를 관두고 다만 새로운 만남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사실 이 장애 정보가 교육가에게 아주 불필요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그에 따라서 참여자에게 맞는 접근 방식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참여자가 뭔가를 쓰는 작업을 힘겨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와는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내가 그 문서를 보았을 때 나는 그런 쪽으로 도움을 받기보다는 센터가 파악하고 있는 참여자들의 모습이 골칫덩어리라는 느낌만을 받았다그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고시설 종사자들과 함께 입소자(청소년)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댔다.




차고도 넘치는 교육


6회기 동안 S쉼터의 여성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시설 종사자와 그들 시설 거주인 사이에 메워지지 않는 골(감정의 골이든 생각의 골이든)이 있다는 것이고그런 골을 메우기 위해 인권 교육가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겠다는 것이었다시설 종사자와 거주인 사이의 권력관계는 과연 그들 내부에서 힘의 조정을 거칠 수 있을까나는 그것이 아주 힘든 일이고외부에서 힘을 보태야만 조정의 가능성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그렇기에 시설에 대해 교육가가 딱 교육일정만 진행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고민을 전달하고 함께 이야기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게임을 가져가면 보통 다른 참여자들은 즐겁게 참여하는데 반해 S쉼터의 참여자들은 시큰둥했다는 것이다그분들은 그다지 적극적이지도 않고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습마저 보였다왜 그럴까 하고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이미 그들에게 이런 식의 교육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을 문제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힘입어 이들은 수없이 많은 교육과 프로그램에 참여(해야)했다교육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굳어져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교육을 받아온 이들에게 이번 인권교육이 특별할 이유가 없다고심해서 준비한 프로그램도 물론 그다지 신선할 것이 없다.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던 참여자의 이야기 중 하나는 시설에 필요한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잘 참여하지 않고 멀찍이 있던 참여자가 내 귀에 조심스레 속삭인 안 될 거 같아요.”, “이미 많이 말해봤는데 말해도 안 바뀌었어요.” 라는 이야기였다이미 이분은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대한 효용감을 상실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에 절망이 퍼졌다변화를 상상하자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가져갔는데사실 이분들은 변화를 상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번번이 좌절을 겪어온 것이었다교육이 실질적인 무언가를 촉발하지 못할 때 참여자가 취하는 방관적인 태도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회기 교육이 끝나고 나와 겨우 나름의 관계를 형성한 참여자분이 기억에 남는다모든 프로그램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며 참여하기를 거부하다시피 한 분이었지만 유독 나와 개인적인 스킨십을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그분은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허접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처음에는 이 감정의 불평등이 살짝 서글펐지만사실 그분의 입장에서는 나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강사 중 하나였을 것이다그분은 분명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꾸준히 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람을 갈망하는 듯 보였다하지만 지금까지 그분에게 주어진 관계는 모두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것이었고그분은 정 붙이지 않기라는 나름의 보호기제를 통해 그런 관계 속에서 얻은 상처들에 딱지를 앉히는 데 성공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참여자와 좀 더 유대를 형성하고 더욱 꾸준하게계속 이 관계를 가져갈 수 있었으면 했지만 결국에는 그러지 못했다전했던 연락처로는 교육 이후 연락이 한 통도 오지 않았다아마 그분들에게 우리는 정말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교사 중 하나였을 뿐일 것이다한 회 교육을 갈 때마다 그분들은 포스트잇 수십 장에 우리의 닉네임과 하트를 그려 넣어 전했다그것은 내가 당신과 이렇게 만났고 함께했음을 그분들이 가장 실재적으로 느끼는 방법은 아니었을까.





누구에게 인권교육이 필요한가


이런 고민들 속에서 과연 누구에게 인권교육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마주한다시설 거주인을 교육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은 그들이 부족하고모르는 것이 많고 또한 문제적이라는 시선을 반영한다하지만 교육을 진행하면서 나는 시설 종사자에 대한 교육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이분들이 시설에서 지내며 겪는 문제의식이 전달되고 어려움이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청소년이 인권을 잘 모르므로 인권교육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오만한 생각이다오히려 이렇게 주장하는 비청소년이 인권의 시선으로 청소년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자주 느낀다그래서 나는 (학교와 같은 시설도 상황은 비슷하지만특히 S쉼터와 같은 청소년 시설에서 진행되는 인권교육의 초점을 청소년의 인권감수성을 깨우자가 아니라 이 시설의 비청소년은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로 옮길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과연 인권교육이 더 필요한 사람은 누구이며 시설은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진단해야 한다또한 온다가 생각하는 인권교육과 시설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인권교육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야 우리는 그제야 시설의 청소년과 효용감 있는’ 인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교육의 개별적인 프로그램을 평가하기보다도 총체적인 청소년 시설과 그 종사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후기를 쓴다이런 문제의식이 온다를 비롯한 인권교육센터에서 공유되고 어떤 식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으면 좋겠다절망의 해독제는 행동이라 했던가.



 


 

Posted by 인권교육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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