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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소식/글쓰기 모임 '끄적끄적'

[끄적끄적]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와플

 

지난주 목요일 4월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앞두고 랄라, 그린과 함께 장애인차별 철폐를 위한 집회에 다녀왔다. 다음날 한파라는 일기예보에 따라 바람이 매서웠다.

 

그린은 그날 열린 행사가 장애연대에겐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라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듣고보니 곳곳에 흩날리는 깃발에 포천, 강원도 등 다양한 지역들의 이름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장애인 수를 훨씬 뛰어넘는 경찰인력과 사복을 입어도 ‘나 경찰이요’라고 표정에 써 있는 사람들. 집회 바깥에서 연일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던 외국인은 자신의 sns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

 

집회 장소에 모이기까지 아침부터 감당한 수고와 인내를 생각하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힘은 그야말로 일당백이었다. 장시간 화장실을 가지 못해 짧게 이야기 하고 마치겠다는 발언자의 말은 내가 쉬이 생각하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마음먹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휠체어를 탄 발언자는 군 복무자가 제대한 후에도 자신이 있던 장소를 향해 오줌도 누지 않듯 30년간 시설에 갇힌 장애인의 통제된 삶은 오죽하겠냐며 탈시설화를 주장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장애인 여성은 아침에 약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이야기를 하며 턱없이 부족한 의료수급권 보장에 관해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무리에 둘러싸여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함께 있는 사람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보호자 없이는 자신의 옷깃을 여미지 못하는 사람들은 매서운 바람에 맞선 바위같았다. 아메리카노를 사와 아들뻘의 휠체어 탄 남성에게 익숙한 듯 손수 마스크를 벗기고 조심스레 빨대를 입에 물려준 양복 차려입은 활동 보조사는 따뜻하게 든든했다.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통제’를 가한다.

 

꽤 오래전 후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된 J와 만난 적이 있다. 그분과 만나기 전 나는 조금 긴장했었다. 서울 어딘가 아무런 장치도 마련되지 않은 지하도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갈 때 J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내 팔에 의지했다. 한발 한발 내려가며 막막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분의 불편을 없앨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읽기라고 한 듯 J는 후천성 시각장애인 중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갈 때 높이를 가늠하지 못한 충격으로 무릎관절이 좋지 않단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예전의 느낌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보조수단이 없는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막막함,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는 그리움..어디든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이동권과 주거권, 탈시설화 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