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가다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손을 놓지 않겠다
온다활동회원 이세훈
‘노가다.’
이게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노가다’라고 언제부터 불렸는지, 왜 그렇게 불렸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를 가리키는 이름은 ‘노가다’다. ‘노가다’에는 건설노동자에 대한 업신여김과 하찮게 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우리는 그런 시선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건설현장에서 우리는 “어이”, “김씨, 이씨”등으로 불린다. 심지어 우리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불리기도 한다. “거기 덤프, 지게차 여기로 와”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도 부르는 사람이 기분이 좋을 때다. 우리가 일을 조금이라도 잘 못하거나, 우리를 부르는 사람이 기분이 나쁠 때는 “X팔”이라는 욕설을 먼저 듣는다. 우리는 ‘노가다’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설노동자는 일용직이다. 오늘 여기서 일하지만 내일도 여기서 일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만성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오늘 하루 일을 하지 못하면 그만큼 임금이 없다. 그래서 우리를 “김씨, 이씨”라고 불러도, 우리를 사람이 아닌 “덤프, 지게차”라고 불러도, 심지어 욕설을 들어도 꾹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해고통지를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우리는 사회에서도 존중받지 못한다. 건설노동자는 사회가 자신을 ‘하찮게’ 취급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우리 건설노동자가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이 중요하지만 우리가 없다면 잠을 잘 집도, 회사에 갈 수 있는 도로도, 일할 공장이나 일터도 없다. 우리 건설노동자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지만 사회적 인식과 대접은 형편없다.
건설노동자에게는 공식적 취업경로가 없다. 모든 것은 인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건설노동자 구직경로를 살펴보면 “팀장‧반장‧기능공 등 인맥”이 가장 높은 64.4%다. 건설산업에서 인맥비중이 높은 이유는 건설노동자 다수가 일용직이기 때문이다. 건설사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설노동자를 상시 고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팀장‧반장에게 연락한다. 그러면 팀장‧반장이 기능인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건설사와 연이 닿아 있는 팀장‧반장이 어떤 일을 물어 오느냐에 따라 건설노동자는 일을 한다. 서울에 사는 건설노동자 바로 집 앞에 건설현장이 있어도 내가 인맥을 구성하고 있는 팀장‧반장이 부산에 있는 건설현장에 가자고 하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게 건설노동자는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 다닌다. 일 년이면 몇 달씩 객지생활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노가다 이미지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것도 포함된다. 2024년 건설노동자는 월 평균 임금은 약 2,996,280원이다. 2024년 정부가 발표하는 4인 기준중위소득이 5,729,913원인 것에 비하면 한참 낮은 금액이다. 2024년 건설노동자 평균 근로시간은 8시간 37분이다. “평균 5시 16분에 기상하여, 6시 26분에 출근하고 16시 59분에 퇴근하여 17시 59분에 귀가”한다. 더 큰 문제는 건설노동자의 노동강도가 무척이나 쎄다는 점이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야만 한다.
건설노동자는 긴 시간 일하면서 낮은 임금을 받고, 객지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삶을 바꾸고 싶었다. ‘노가다’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싶어서 건설노조를 만들었다. 건설노동자의 요구는 소박하다. 남들 하는 것만큼 만 해달라는 거다. 남들처럼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싶고, 남들 일하는 시간만큼만 일하고, 남들처럼 내 집에서 출근해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한 뒤에 내 집으로 퇴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건설노조를 했다. “건설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 구호는 70년대 전태일 열사가 외친 구호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21세기에 건설노동자들이 외치는 구호다.
건설노조로 뭉쳐 이렇게 외친 덕분에 건설노동자의 삶은 조금 나아졌다. 임금이 조금 오르고, 노동시간이 줄었으며, 건설현장이 조금은 안전해졌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욕설은 완전히 사라졌고, 관리자에게도 ‘~님’으로 불리거나, 이름을 모르면 ‘반장님’으로 불린다.
건설노조에서 2022년 부산 레미콘 노동자들과 1박 2일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건설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가장 좋은 게 뭡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다. 60여 명이 교육에 참여 했는데 놀랍게도 절반 가까이가 비슷한 대답을 했다. 레미콘 노동자 평균 연령은 60대가 주를 이룬다. ‘건설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가장 좋은 게 뭡니까?’라는 질문에 그 노인네들이 눈물이 글썽이면서 말했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레미콘 믹서트럭은 레미콘 공장에서 콘크리트를 싣고, 현장에 가서 타설을 한다. 공구리 작업은 대부분 현장 건설노동자의 일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이 오후다. 양이 많으면 밤새 일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공구리 날짜가 언제 잡힐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내일 친구와 약속을 잡아도 공구리가 잡히면 일을 하러 가지 않을 수 없다. 가족과의 저녁은 물론 할 수 없다. 오죽하면 한 레미콘 노동자는 “우리 아들, 딸 졸업식엔 아버지 얼굴이 없습니다. 먹고 살려고 레미콘 운전대를 잡았는데 밤낮 일만 하다보니 졸업식 한번 가지 못하고 애들이 컸습니다.”고 하며 울먹였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웠다. 가족과 저녁을 먹는 게 뭐라고.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대부분의 노동자는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들어가면 가족과 저녁을 먹는 게 일상인데 우리는 그 소박한 일상이 겨우 노동조합을 해야지 만이 가능하냐고? 왜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거냐고? 맘속으로 누군가에게도 모를 하소연을 쏟았다.
건설노동자의 객지 생활을 완화하기 위해 건설노조는 ‘지역주민 우선고용’을 내걸고, 지역에 현장이 개설되면 지역 노동자를 우선 고용할 것을 건설사에 요구했다. 그 결과 그 지역에 있는 사람이 그 지역의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건설)노조에 가입한 다음에 근처에서 일하고 다시는 떠돌이 생활을 안 하고 보따리 안 쌌습니다. 멀어도 한 20~30km예요. 당연히 차로 출퇴근하죠. 그 후에는 숙소 생활은 단 하루도 안 했으니까. 매일 애들 집사람 이렇게 만나고 같이 저녁 식사하는 게 얼마나 좋아요.
건설노조를 통해서 임금이 오르고, 노동시간이 단축됐을 뿐 아니라, 건설현장에서 욕설을 안 듣고,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건설노조를 통해 가족관계도 새롭게 맺게 됐다. 우리 건설노동자에게 건설노조는 그냥 노조가 아니라 나의 노동조건을 좋게 바꾸어준 곳 일뿐 아니라, 건설노동자로서 자존감을 세워주고, 나의 인간관계까지 바꿔준 곳이다. 그래서 우리 건설노동자는 건설노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가 건설노조 조합원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건설노동자의 사랑이며 자랑인 건설노조가 쓰레기통에 쳐 박히는 일은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대통령은 2023년 2월 21일 국무회의에서 “건폭(건설폭력)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발언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국토교통부 장관, 검찰, 경찰이 움직였다. 건설노조는 사무실 압수수색 22차례, 조합원 2,200여 명 소환조사, 조합원 42명이 구속 됐다(2024. 12. 26일 기준).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우리 동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양회동 열사는 유서에서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고 했다. 그리고는 “윤석열의 검찰 독재,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놈, 꼭 퇴진 시키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꼭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며 분신했다. 건설노조는 양회동 열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권에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외로웠다. 한국 사회에서 건설노동자가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12.3 내란 사태 이후 많은 사람이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광장에서 건설노동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윤석열 탄핵, 윤석열 구속을 외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건설노동자에게 다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면 주는데로 먹는 ‘노가다’의 삶을 강요했지만, 우리는 다시는 결코 ‘노가다’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노가다’가 아니라 건설노동자임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건설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대접받는 사회는 모든 노동자가 대접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건설노동자가 제대로 된 임금과 적당한 노동강도, 일 끝나면 가족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면 모든 노동자도 이런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미 있는 근로기준법만 제대로 지켜도 이런 사회가 될 수 있다. 지위가 높은 누군가가 말했던 ‘공정과 상식’만 제대로 지켜져도 건설노동자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된다. 우리 이제 광장에서 손을 잡자. 그리고 그 잡은 손 광장을 떠나서도 놓지 말자. 앞으로도 건설노동자가 ‘노가다’가 되지 않고,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 우리도 당신의 삶을 위해 관심을 놓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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